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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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태는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7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시인, 무용 평론가, 화가, 음악 및 연극 평론가이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59년 시로 등단하여 18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무용 평론과 미술, 음악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현대문학상, 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예술 평론 활동을 통해 현대 무용 장르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의 시는 심미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자아와 타자 간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양가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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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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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김영태 |
출생일 | 1936년 11월 22일 |
사망일 | 2007년 7월 12일 |
국적 | 한국 |
직업 | 시인 |
학력 | |
모교 | 추가 정보 필요 |
경력 | |
활동 기간 | 추가 정보 필요 |
수상 | |
수상 내역 | 추가 정보 필요 |
2. 생애
김영태는 1936년 11월 22일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 둔다>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으며, 모두 18권의 시집을 출간했다.[1][2]
1966년부터 자유극장 동인으로 활동했고, 1969년부터 무용 평론을, 1976년부터는 음악펜클럽 동인으로 활동했다. 1971년 이후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문학, 춤, 미술, 연극, 음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예술가였다.[1][2] 시인, 무용 평론가, 화가뿐만 아니라 음악 및 연극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클래식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고 1967년 음악 팬클럽 단체를 설립, 음악 평론집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1966년 '자유극장'에 참여, 약 10년간 연극 평론가로도 활동했다.[1][3][4]
1968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외환은행에서 근무하면서도 예술 관련 약 60편의 작품을 남겼다.[1][3][4]
2005년 신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7년 7월 12일 작고했다.[4][5][6]
2. 1. 문학 활동
김영태는 1959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문예지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 둔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7] 그는 시인 이승훈, 이수익과 함께 현대시한국어 동인의 일원이었다. 현대시 동인은 1961년 6월에 창립되어 1972년까지 26호의 동인 작품집을 발간했는데, 이는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동인이었다. 1964년 6호부터 기존의 동인 구성원이 새로운 시인들로 교체되었고, 김영태도 그 중 한 명이었다.[7] 이 동인을 통해 김영태, 이승훈, 이수익 등은 198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초석이 되었다.[7]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에 속하는 시인들이 이 "현대시" 동인에 참여했으며, 그들의 시는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내면 탐구, 실험적인 언어 사용, 환상의 추구로 특징지어졌다.[7]김영태의 시는 자아와 타자 간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양가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7] 그의 시는 다른 예술 작품에도 자주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시를 토대로 30편 이상의 무용 작품을 썼다.[1] 그의 시 〈멀리 있는 무덤〉은 김수영 시인을 기리기 위해 쓰여졌으며, 이후 무용 공연과 연극으로 제작되었다.[8]
1966년부터 자유극장의 동인으로 활동했고, 1969년부터는 무용 평론을 기고했다. 1976년부터는 음악 펜클럽 동인으로 활동했다. 현대문학상, 시인협회상, 서울문화예술평론상(무용), 허행초상(무용평론상), 현대무용진흥회 댄스 하트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1][2]
2. 2. 예술 평론 활동
김영태는 1966년부터 자유극장 동인으로 활동했고, 1969년부터 무용 평론을 기고했다.[1] 1976년부터는 음악펜클럽 동인으로 활동했다.[1] 시인, 무용 평론가, 화가뿐만 아니라 음악 및 연극 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음악 평론가로 평론 경력을 시작했으며, 클래식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고 1,400장이 넘는 LP판을 소장했다. 1967년에는 음악 팬클럽 단체를 설립하여 활동했고, 음악 평론집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1966년에는 '자유극장'에 참여해 약 10년간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1][2]1969년부터 공식적으로 무용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3][9] 당시 무용 평론은 주로 외국 저작물의 번역으로 이루어졌는데, 김영태는 직접 공연을 보고 상세하게 글을 쓰는 한국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무용 평론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4][2] 현대 무용 장르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상세한 묘사와 시적인 문체로 표현되는 인상주의적 평론으로 인해 "현장 무용 평론가"로 불렸다.[6][10]
3. 작품 세계
김영태는 학창 시절부터 시인을 꿈꾸며 시를 썼다. 1959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문예지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7] 이승훈, 이수익과 함께 현대시한국어 동인으로 활동했다. 현대시 동인은 1961년 6월 창립되어 1972년까지 26호의 동인 작품집을 발간하여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동인으로 평가받는다.[7] 1964년 6호부터 동인 구성원이 교체되었는데, 김영태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 동인을 통해 김영태, 이승훈, 이수익 등은 198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초석이 되었다.[7]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시인들이 "현대시" 동인에 참여했으며, 이들의 시는 현대인의 내면 탐구, 실험적 언어 사용, 환상 추구 등으로 특징지어졌다.[7]
김영태의 시는 자아와 타자 간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양가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7] 그의 시는 다른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토대로 30편 이상의 무용 작품을 썼으며,[1] "멀리 있는 무덤"은 김수영 시인을 기리기 위해 쓰여 무용 공연과 연극으로 제작되었다.[8]
김영태는 중학생 시절 발레 사진집을 보고 춤에 매료되었고, 1969년부터 무용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3][9] 당시 무용 평론은 외국 저작물 번역이 주를 이루었으나, 김영태는 직접 공연을 보고 상세하게 글을 쓰는 한국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4][2] 그는 현대 무용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상세한 묘사와 시적 문체의 인상주의적 평론으로 "현장 무용 평론가"로 불렸다.[6][10] 30년 이상 공연을 보고 평론을 썼으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은 그를 위해 영구 지정석(가열-123석, 이후 가열-L10석)을 비워두었다.[11][12][13] 사후에는 매 시즌 추모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12]
그는 대학 전공을 살려 춤과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977년부터 문지사 시집 표지에 시인들의 캐리커처를 그렸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거칠고 투박한 선이 특징이다.[14][15] 그의 개인 서체인 ''초개눌인체'' 또한 그림 스타일과 유사하며, 독특한 아치 형태로 흘러가는 듯한 특징을 보인다.[10]
김영태의 시는 독특한 미적 감각과 관능적 언어로 인해 난해하고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심미주의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심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을 지칭하는 비평 용어로,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며 이국적인 주제와 에로틱한 시적 언어를 통해 낯선 방식으로 이질적인 시적 언어를 결합하여 심미적 가치를 우선시한다.
초기 작품에서 그는 낯선 방식으로 관찰 대상의 감각적 인상을 묘사했다.[16] 대상은 객관적으로 묘사되었지만,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기묘한 단어와 어조를 사용했다.[17] 관련 없어 보이는 두 대상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후기 작품에서는 사물의 감각적 인상이 여전히 나타나지만, 주관적인 목소리가 개입하여 자신과 삶에 대한 내면 성찰을 드러낸다.[16] 대상과 자아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대상은 자아에게 위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2005년 마지막 시집 ''누군가 다녀갔듯이''를 발표하면서 김영태의 시는 "자신과의 대화"가 된다.[18] 화자는 대상을 관찰하고 감각적으로 경험하다가 자신을 삽입하여 풍경을 완성한다. 자신과 삶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사소한 것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 그리고 그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삶은 새로운 의미로 밝혀지고 능동적인 변화를 겪는다.[19]
김영태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언어를 부여하여 시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개인적인 예술적 경험을 작품의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한국 시단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며, 예술 자체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16] 예를 들어, "발라드"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작품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시의 선행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악의 소리는 "척추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 "흔들리는 서풍의 살덩이"와 같은 은유로 표현된다.[20] 소리, 신체 움직임, 시각적 이미지는 다른 감각들과 연결되어 언어로 나타난다. 이는 김영태 시의 공통적인 서술 기법이다.
4. 저서
김영태는 시집, 시선집, 시론집, 산문집, 무용 평론집, 미술책, 음악 평론집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집필했다.
4. 1. 시집
발간 연도 | 제목 | 출판사 |
---|---|---|
1965 |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 | 중앙문화사 |
1970 | ≪바람이 센 날의 인상≫ | 현대문학사 |
1975 | ≪초개수첩≫ | 현대문학사 |
1978 | ≪객초≫ | 문예비평사 |
1979 | ≪북(北)호텔≫ | 민음사 |
1981 | ≪여울목 비오리≫ | 문학과지성사 |
1984 | ≪어름사니의 보행≫ | 지식산업사 |
1986 | ≪결혼식과 장례식≫ | 문학과지성사 |
1988 |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 | 민음사 |
1989 | ≪매혹≫ | 청하 |
1993 | ≪고래는 명상가≫ | 민음사 |
1995 | ≪남몰래 흐르는 눈물≫ | 문학과지성사 |
2000 | ≪그늘 반근≫ | 문학과지성사 |
2005 | ≪누군가 다녀갔듯이≫ | 문학과지성사 |
2005 | ≪물거품을 마시면서 아껴가면서≫ | 천년의 시작 |
4. 2. 시선집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유태인(猶太人)이 사는 마을의 겨울≫ | 중앙문화사 | 1965년 |
≪바람이 센 날의 인상(印象)≫ | 현대문학사 | 1970년 |
≪초개수첩(草芥手帖)≫ | 현대문학사 | 1975년 |
≪객초(客草)≫ | 문예비평사 | 1978년 |
≪북(北)호텔≫ | 민음사 | 1979년 |
≪여울목 비오리≫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
≪어름사니의 보행(步行)≫ | 지식산업사 | 1984년 |
≪결혼식과 장례식≫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 | 민음사 | 1989년 |
≪매혹≫ | 청하 | 1989년 |
≪가을, 계면조 무게≫ | 미래사 | 1991년 |
≪고래는 명상가≫ | 민음사 | 1993년 |
≪남몰래 흐르는 눈물≫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
≪그늘 반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
≪누군가 다녀갔듯이≫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
≪과꽃≫ | 지만지 | 2012년 |
4. 3. 공저
- 피문어한국어 외 2편, 《1987년 편지》, 청하, 1987.
- 가슴에 달린 서랍한국어 외 4편, 《현대시 94》, 문학세계사, 1994.
4. 4. 시론집
- 《변주와 상상력》, 고려원, 1984.
- 《장판지 위에 사이다 두 병》, 책세상, 2002.
4. 5. 산문집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지구 위에 조그마한 방 | 지식산업사 | 1977년 |
눈썹을 그리는 광대 | 문장사 | 1977년 |
간주곡 | 문예비평사 | 1979년 |
물 위에 피아노 | 고려원 | 1980년 |
질기고 푸른 빵 | 소설문학사 | 1981년 |
백색 신부들에게 | 자유문학사 | 1987년 |
예술가의 삶 | 혜화당 | 1993년 |
핀지콘티니가의 정원 | 월간오디오사출판부 | 1993년 |
징검다리 | 혜화당 | 2002년 |
초개일기 | 눈빛 | 2017년 |
4. 6. 무용 평론집
김영태는 중학생 시절 발레 사진집을 보고 춤에 매료되었다. 1969년부터 공식적으로 무용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3][9] 당시 무용 평론은 주로 외국 저작물의 번역으로 이루어졌는데, 김영태는 직접 공연을 관람하고 상세하게 글을 쓰는 한국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무용 평론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4][2] 그는 현대 무용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상세한 묘사와 시적인 문체로 표현되는 그의 인상주의적 평론으로 인해 "현장 무용 평론가"로 불렸다.[6][10] 30년 이상 공연을 관람하고 평론을 썼으며, 그가 자주 찾던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은 그를 위해 영구 지정석으로 가열-123석(이후 가열-L10석)을 비워두었다.[11][12][13]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극장은 매 시즌 그를 기리는 추모 공연을 열기도 했다.[12]김영태의 무용 평론집은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 | 제목 | 출판사 |
---|---|---|
1985 |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 | 지문사 |
1987 | 《막간》 | 청하 |
1988 | 《저녁의 코펠리아》 | 고려원 |
1991 | 《연두색 신의 가구들》 | 시와 시학사 |
1993 | 《눈의 나라 사탕비누들》 | 눈빛 |
1995 | 《멀리서 노래하듯》 | 눈빛 |
1996 |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1969~1996)》 | 눈빛 |
1997 | 《사라지는 사원 위에 달이 내리고》 | 눈빛 |
1999 | 《남천도 조금》 | 눈빛 |
2000 | 《춤으로 풍경을 만든다면》 | 서울문학포럼 |
2001 | 《사물을 넘어 마음으로》 | 눈빛 |
2002 |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 | 눈빛 |
2003 | 《당신의 발끝으로》 | 눈빛 |
2004 | 《살아있는 춤 눈으로 쓴 시》 | 눈빛 |
2005 |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1996~2005)》 | 눈빛 |
2006 | 《저 멀리 크리스탈》 | 눈빛 |
4. 7. 미술책
그는 대학 전공에 맞춰 춤과 음악을 주제로 한 자신의 그림 개인전을 자주 열었다. 1977년부터 그는 소설가 이재하와 함께 문지사 시집 표지에 시인들의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거칠고 투박한 선이 특징이다.[14][15] 그의 개인적인 서체인 '초개눌인체' 또한 그림 스타일과 유사하며, 독특한 아치로 쉽게 흘러가는 듯한 특징을 보인다.[10]제목 | 출판사 | 출판연도 |
---|---|---|
잠시 머물렀던 환영들 | 열화당 | 1980 |
섬 사이에 섬 | 현암사 | 1982 |
인간의 집 | 보리수 | 1985 |
연습곡 98번 | 융성출판 | 1987 |
왕래 | 디자인사 | 1989 |
편도 나무들 | 한마음사 | 1991 |
선의 나그네 | 말과글 | 1992 |
육도 간격의 산책 | 재원 | 1997 |
시인의 초상 | 지혜네 | 1998 |
4. 8. 음악 평론집
- 《음의 풍경화가들》, 서적포, 1991.
- 《음, 꿈의 전람》, 돋을새김, 2004.
5. 수상
참조
[1]
웹사이트
김영태
https://terms.naver.[...]
[2]
뉴스
Kim Youngtae: A ‘Full Range Artist’ That Encompasses Diverse Genres
https://news.naver.c[...]
Yonhap News
2007-07-12
[3]
뉴스
Touched by Beauty: The Eternal Bohemian Captivated by Poetry, Dance, Music, and Art
https://monthly.chos[...]
Monthly Chosun Newsroom
2006-06
[4]
웹사이트
13번째 무용평론집 낸 김영태씨
https://news.naver.c[...]
[5]
웹사이트
암투병 김영태시인 '징 캐리커처' 전시회
https://news.naver.c[...]
[6]
뉴스
Prolific and Multi-Talented Artist Kim Youngtae’s Passing
https://www.nocutnew[...]
No Cut News
200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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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내면을 파서 빈틈 채운 ‘현대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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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8
[8]
웹사이트
무기력과 절망의 시대..꿈조차 동이 나고 시들다, 연극 `멀리 있는 무덤`
http://www.viva100.c[...]
2016-10-10
[9]
웹사이트
"[에세이 오늘]모리스 라벨"
https://www.asiae.co[...]
2018-12-28
[10]
웹사이트
네이버 뉴스
https://news.naver.c[...]
[11]
웹사이트
"[사람들]고서들의 전시회 연 이규용씨 등"
https://news.naver.c[...]
[12]
웹사이트
김영태 선생 1주기 추모 '나의 뮤즈들' 공연
https://news.naver.c[...]
[13]
웹사이트
김영태
https://terms.naver.[...]
[14]
뉴스
An Artist and Author of Literature
http://www.donga.com[...]
Dong-A Ilbo
2017-07-17
[15]
웹사이트
김영태의 편지들
http://www.munhwa.co[...]
[16]
간행물
The Power of a Tranquil Landscape: On Kim Youngtae’s Poetry
Poetry & World
2003-06
[17]
서적
Confronting the Era as Methodological Participation
Jisik
1984
[18]
웹사이트
See the introduction to Nugunga danyeogatdeusi on the Aladin Bookstore website
https://www.aladin.c[...]
[19]
서적
The Shade of Love
Moonji
2005
[20]
웹사이트
"[경향시선]발라드"
http://news.khan.co.[...]
201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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